레디메이드 인생인가?

-청춘남녀의 만남-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 생물체가 있을까? 도시의 공원이나, 농춘의 논밭이나, 산기슭의 흙 1그램에는 수억의 미생물이 살고 있고, 장마철 후덥지근한 부엌에 놓아둔 먹다 남은 우유가 변패하는 냄새를 내기 시작할 때는, 그 1밀리리터 안에 백만 개 정도의 미생물 세포가 증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 얼마의 생물체가 움직이고 있을지는 신도 모르는 얘기일 거다.
이러한 세포는 종류에 따라서, 어림잡아 30분에 한번씩, 두시간에 한번씩, 혹은 하루에 한번씩 분열이나 출아의 형태로 증식해나간다. 30분에 한번씩 분열하는 대장균 등은 원시핵 세포로서, 양분이나 온도가 총족한 조건이면, 그 한 마리는 하룻밤 동안에 약 160만개로 그수가 늘어나며, 만 하루면 280조로 늘어난다. 고등한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이러한 번식 능력은 수시로 변화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종족을 유지해야 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할 때, DNA와 세포질이 2배로 늘어나고,각각 양 등분이 되어 똑같은 두개의 세포로 나누어진다. 사람의 세포는 DNA가 없는 적혈구를 제외하고 그 아비에서 받은 23개의 DNA염색체와 어미에서 받은 23개가 합쳐진 23쌍의 염색체, 즉 46개의 염색체 DNA를 가진다. 이 46개의 염색체는 약 30억의 DNA쌍으로 이루어지고 약 5만개의 유전자 쌍을 가지며, 이 유전자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46개의 염색체는 세포가 분열하기 전에 복제되어 2배로 증가하고, 다시 정확하게 46개씩으로 나누어져 2개의 체세포로 늘어난다.
이와는 달리 정소에서는 23쌍 46개의 염색체로써 23개의 염색체만을 가진 정자를 만드는데, 이때 만들어질 수 있는 정자는 2의 23제곱으로 팔백사십만 종류이고, 여성의 난소에서 만들어지는 난세포도 같은 방식으로 팔백 사십만 종류가 된다. 이러한 정세포와 난세포가 만나,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수정란이 되는데, 한 쌍의 청춘남녀가 만나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정란의 가짓수는 팔백 사십만의 제곱으로 칠십조나 되는 셈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동일 부모가 칠십조의 자손을 낳아도 저마다 다른 유전자를 가진 자손이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아들, 딸이 태어날 확률은 칠십조 분의 일로, 그것은 없음에 가깝다. 물론 요즈음은 아기 둘을 낳는 부부조차도 그수가 적지만, 그 태어난 아들과 딸은 이미 오래 전에 인류의 탄생 이래로 결정된 이 확률 값 가운데서 하나의 선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도공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도자기의 모양은 얼마나 될까? 아무도 알수 없지만 만들어 질수 있는 도자기 모양의 수는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모양을 만들 것인가는 도공의 기술과 마음이고, 혹은 도공의 손끝의 움직임을 지령하는 뇌세포와 유전자와 환경의 관계에 달려있다.

이처럼 가능한 도자기의 수만큼이나 많은 정세포와 난세포의 만남의 가짓수가 청춘남녀에게는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모양새의 아기생명체를 낳을 것인가는, 다시 말해서 어떤 정세포와 난세포가 만나서 수정란으로 될 것인가는, 여전히 청춘남녀의 영역밖에 있는 지도 모른다.
장래에는 생명공학의 기술로써, 투정 정세포와 특정 난세포의 DNA를 구별하여 선택적으로 수정란을 만드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는 고수의 도공이 도자기 작품을 만들기 전에 조용히 마음을 모으고 합장하여 기원을 드리듯이 청춘남녀도 한번쯤 마음을 모아서, 칠십조의 확률 가운데서 선택될 그들의 수정란을 위하여 두손을 모아 정성껏 기원을 드리는 것은 지극히도 과학적인 일일 것이다. (2001,8)

<필자 노민석은 서울 동성고, 건국대학교 및 대학원을 수료하고 일본 동경대 응용생명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본 통산성 생명공학연구소 COE 연구원,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 휴스턴 의과대학 박사후연구원, 카톨릭의대 계약교수, 서울의대 암연구소 계약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