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유전자는

고등세포는 핵과 세포질의 소기관들로 이루어지는데, 핵 속의 DNA는 세포 전체의 모든 정보를 소유하고, 세포질에는 물질 생산에 필요한 소공장들이 위치한다. 세포는 바깥 환경에 따라서 DNA와 세포질의 유기적인 작용으로, 필요한 물질을 만들면서 성장과 복제와 휴면의 길을 선택한다.
세포는 그 종류에 따라서 약 4천개에서 5만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며 이 가운데서 약 20%정도의 유전자를 항상 동적으로 가동하면서 적절하게 생을 유지하고 발전해 나간다.
세포의 유전자는 구조유전자와 제어유전자로 구성되는데, 구조 유전자는 대부분이 효소 활성을 가지는 단백질을 코드하며, 이 효소들은 세포내의 주요 대사작용을 담당한다. 제어유전자는 구조유전자와 다른 제어유전자의 작동을 제어하는데, 제어유전자가 코드하는 단백질로 된 제어인자는 목표하는 유전자 위에 결합하여, 촉진과 저해의 상극의 방법으로 그 유전자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세포의 성장을 계속적으로 촉진하여,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유도하는 원발암성 유전자와 이를 저해하는 제암성 유전자도 세포의 성장에 대하여 상극의 형태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렇듯 제어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을 제어하면서, 세포의 성장속도를 조절하고, 세포의 전체성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한편,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세포를 유도한다.
한편 세포막은 유동성이 있는 인지질의 이중막으로서, 환경과 세포의 경계를 이루면서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세포를 환경 속에 존재하게 한다. 만일 세포막이 없으면, 세포의 70%를 차지하는 물과 세포 내용물은 흘러서 세포의 형태가 유지되지 못한다.
이러한 유동적 세포막에는, 세포 내부와 바깥 환경을 연결하는 수많은 통로와 바깥의 정보를 수집하는 안테나가 위치해 있어, 환경과 세포간의 물질 이동과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준다. 이 연결 통로를 통하여 양분은 세포 내로 이동되고, 또한 세포 내의 노폐물은 세포밖으로 배출된다. 세포막에 있는 수많은 종류의 안테나는 온도, 수분, 양분, 세포 간 전달물질, 정보 전달물질 등의 변화상태를 인식하여, 실시간으로 세포 내부로 그 정보를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유전자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세포는 생육하거나 정지하거나 사멸한다.
핵속의 거대한 게놈 유전자는 보수적 유전자와 진보적 유전자로 분류된다. 보수적 유전자는 현재를 지속하도록 작용하고, 진보적 유전자는 현재의 환경변화와 혹은 다가올 미래의 환경변화에 대응하도록 작용한다.
진보적 유전자로 분류되는 바이러스 유전자는 바이러스의 특성에 필수적인 유전자만 소유하고, 필요한 나머지의 유전자는 다른 세포에 침입한 후, 그 세포의 유전자와 소공장을 이용함으로써 자신을 복제하고 증식한다. 나중에는 침입한 숙주세포의 유전자에 끼어 들어가, 그 유전적 성질을 변화시키거나, 숙주세포를 용해하여 죽음으로 이끈다.
게놈유전자 사이를 자유로이 건너뛰면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움직이는 유전자인 전위성 유전자 transposon는 진보적 유전자에 속하며, 변이에 의해 세포를 불멸화하는 Ras유전자도 원발암성인 진보적 유전자이다. 이렇듯 세포의 성질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진보성으로 분류한다. 진보적 유전자는 변화해 가는 환경에서의 세포의 생존성을 제시하면서, 보수적 유전자의 위에서 움직이는 생명의 힘이지만, 한편 불멸성의 암화를 일으켜 개체 전체의 괴멸을 가져오기도 한다.
현재는 유지되는 것이 정의 방향이고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정의 방향이며, 또한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공유함으로써 더욱 강해진다. 진보는 보수 위에서 춤을 추면서 서서히 보수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고, 선택된 진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수속에서 새로운 보수가 된다. 그동안 새로이 생성된 진보는 이미 저 앞에 가있다. 보수는 진보를 낳고 진보는 새로운 보수를 낳고, 다시 새로운 진보는 앞서감으로써 현재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간다.
진보가 절대 우위이거나 전체가 진보적이어서, 현재가 보수 없는 진보의 일색이면, 맹렬하게 몰아치는 태풍이 마침내 동해 바다에 이르러 소멸하여 사라지듯이, 그 현재는 분해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반대로 보수의 일색이면, 현재는 노화되고 부패되어 노폐물로 가득 쌓여 녹아 허물어져서 퇴보의 길을 걸으면서 역시 그 형체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언제나 보수와 진보는 앞서거나 뒤서면서 균형적으로 작용한다. 저만큼 앞에 가는 진보는 피고 지는 들꽃과 같고, 뒤에 오는 보수를 위한 시간적 희생이지만, 보수의 진로와 방향을 설정하고 현재에서 미래를 예견해주는 중요한 존재이다. 보수와 진보는 전체를 유지하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양과 음의순환이다(2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