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북한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던 김일성.
그는 지난 1994년 7월 8일 심근경색으로 인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지기 직전까지 왕성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스트레스속에서 목 뒤의 혹(일종의 종양)과 60대에 두번이나 찾아온 중풍 등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겪은 후에도 82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20여년의 세월동안 별다른 이상없이 건강하게 살다 숨진 김일성의 장수비결은 무엇일까.
평양의대 고려의학부를 나와 김일성장수연구소(공식 명칭 기초의학연구소)의 심혈관및 노화방지 연구원, 북한군 88호병원 진료부장 등으로 근무하다 1998년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한의사 석영환(37)씨는 김일성 건강비결은 자연요법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해 화제를 모았던 석씨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김일성 장수건강법'(팜파스刊)을 내놓았다.
"김일성은 자연요법의 추종자였는데, 그의 의식주 생활 모두가 자연요법 자체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는 되도록 가공이 안 되거나 덜 된 것만 먹었습니다."
석씨는 "김일성은 평소에 모든 의식주를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자신의 몸에 맞게 실천했다"며 "바로 그것이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라고 말했다.
석씨에 따르면 김일성의 지시 아래 1976년 설립된 김일성장수연구소가 특별히 자연요법 연구에 치중했던 것도 김일성이 자연요법의 신봉자였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약이나 주사, 수술 등의 서양의학적인 치료보다 민간요법이나 자연요법 등 자연 친화적인 건강법을 적극 활용했는데, 의료진들이 목 뒤에 난 혹에 대해 여러 차례 수술을 권했음에도 끝내 거절했던 것도 서양의학보다 자연요법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라고 석씨는 말했다.
특히 성 생활과 음식에서 과도한 집착보다는 적당한 유지를 위해 노력했고, 심지어 두통이나 치통 같은 통증까지도 약초나 침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또 잠자리 베개는 32가지 한약재가 들어간 '신선베개'를 사용했고, 이불은 참새의 턱 밑 잔털만을 써서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덮었다.
천진난만한 소녀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기쁨조가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하듯이 웃고 떠들며, 반말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재롱을 떨면서 사탕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을 보면서 걱정과 근심을 덜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고 한다. 흔히 김일성의 성적 노리개라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기쁨조는 실상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석씨는 따라서 김일성이 따르는 자연요법은 북한에서 의학적으로 중시될 수 밖에 없었고, 김일성이 즐겨 먹고 실천한 무공해 식품 건강법은 그대로 북한 주민들의 장수건강법이 되었다고 전했다.
석씨는 책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장수 비결로 제 때 피로를 풀어주는 운동을 하고, 많이 걷고, 마늘을 먹고, 소식하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212쪽. 9천500원.(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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