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형사11부 김기영 부장판사)이 지난 3일 미성년자 성폭행범(30대)에 대해 처음으로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를 명령하면서 '화학적 거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학적 거세를 둘러싼 인권 침해, 범죄 예방 실효성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2011년 7월 '성폭력 범죄자의 성 충동 약물 치료에 관한 법'(이하 '화학적 거세법') 시행 이후 법원 선고로 화학적 거세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성도착증 환자가 병원을 찾아 자진해서 화학적 거세를 하거나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화학적 거세가 이뤄진 경우는 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강간치상, 특수강도강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고 누범 기간에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며, "다수 피해자를 상대로 장기간에 걸쳐 범행했으며 왜곡된 성의식을 갖고 있고 성욕 과잉 장애 등으로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했지만 청소년 피해자의 성을 사고 강간했으며 이를 촬영해 협박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피해자들이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고 피해자들이 강력한 처벌을 바라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화학적 거세는 약물을 투여해 성충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수술로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와 구별된다. 대상자는 석방 전 2개월 안에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석방 후에도 주기적으로 약물치료에 응해야 한다.
법원은 청구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15년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치료명령을 선고한다. 다만,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는 치료명령을 내릴 수 없다. 치료명령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보호관찰관이 집행한다.
약물은 '루크린' 등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GnRH Agonist)를 중심으로 여성호르몬(MPA), 전립선 암치료제(CPA) 등이 사용된다.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는 뇌하수체에 작용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성충동이나 환상을 줄이고 발기력을 저하하는 약품이다. 전립선암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어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성충동 약물치료 제도를 도입한 것은 한국이 최초다. 세계적으로는 캘리포니아(1997년) 등 미국의 8개 주(州)와 독일(1969년), 덴마크(1973년), 스웨덴(1944년), 폴란드(2009년) 등은 이미 성충동 약물치료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화학적 거세가 처벌보다는 치료의 개념이 강하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성범죄자가 약물치료위원회에 약물치료를 신청하면 위원회의 진단 절차를 거쳐 국가부담으로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말 뉴델리에서 발생한 버스 집단 성폭행 사망사건으로 성범죄 처벌 강화 요구가 거센 가운데 인도 정치권이 화학적 거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화학적거세가 성범죄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욕과잉 환자 3명에게 약물을 적용한 결과 효과가 있었다"며, "성범죄 근절 차원에서 화학적 거세를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화학적 거세를 중단하면 바로 남성호르몬 수치가 원상 복귀돼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지난 2010년 8월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18세 성도착증 환자에게 국내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를 진행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과 의학계 일부에서는 아직 화학적거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약물 투여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인데 모든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 마냥 비춰지는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중소병원] 기사입력 2013-01-04, 15:34
- Copyrights ⓒ 인터넷중소병원 & ihospital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