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를 마주 대하지 않고 전화진료만으로 처방전을 발급해도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특히, 이러한 판결은 동일한 의료법 조항을 두고 '직접 진찰'의 의미를 '대면 진료'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지난해 3월 결정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혼선이 예상된다.
현행 의료법 제17조1항은 '환자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검안서,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18일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에 따르면 전화로 환자를 진료하고 약을 처방해 줘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 신모(48)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의료법상 '자신이 진찰한 의사'나 '직접 진찰한 의사'라는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이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진찰'하거나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전화 진찰은 직접 진찰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위법함이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 시내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신씨는 2006년 1월∼2007년 5월까지 총 672차례에 걸쳐 환자를 '직접(대면)' 진찰하지 않고 살 빼는 약의 처방전을 내준 혐의로 기소됐다. 1차례 이상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고 살 빼는 약을 처방받은 환자 중 병원 방문이 어렵거나 추가 처방전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전화통화로만 진료하고 처방전을 써줬다는 게 공소 사실의 요지였다.
환자들은 병원 창구에서 직원으로부터 처방전만을 받아가거나 이전에 약을 조제받은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달라고 병원에 요청한 뒤 택배로 약을 전달받았다.
2007년 4월 개정 이전의 의료법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자신이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주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개정 의료법에서는 '자신이 진찰한 의사' 문구가 '직접 진찰한 의사'로 수정됐다.
1심 재판부는 "'직접 진찰'에 '전화 또는 이와 유사한 정도의 통신매체' 만에 의한 진찰은 포함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신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2심은 2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해당 의료법의 헌법 위배 여부를 따져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고, 대법원은 합헌인 의료법 조항을 해석한 것"이라며,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을 소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사건은 한 번 이상 대면진료를 한 뒤 전화진료를 한 경우에 대한 판결"이라며, "모든 전화진료가 적법하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헌재 관계자도 "합헌 결정은 법원에 기속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지난해 3월 신씨가 해당 의료법 조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4(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헌재는 당시 "의료법상의 '직접 진찰한'은 '대면해 진료한' 이외에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다"며 이번 판결과 반대의 이유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