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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의료현실과「살인 방조죄」
"'보라매사건' 파장 법·제도 정비 시급하다"
퇴원하면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의사가 퇴원시킨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살인방조죄'를 적용,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한동안 잠잠했던 `소극적 안락사'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를 보호자 요구로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보라매병원 의사 양모 씨와 3년차 수련의 김모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이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계기로 「소극적 안락사」문제가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안락사형 관행적 의료행위에 제동

이번 판결은 의료계의 관행인 안락사형 의료행위에 대한 제동으로 보인다. 법리적인 측면에서 판단해 내려진 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냉철한 법리적 판단에 더해 현실적 문제를 감안하는 배려는 할 수 없는 것일까. 소생이 어려운 환자의 치료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핍박한 가족들의 아픔과 의사가 처한 입장을 헤아려 보는 지혜는 없는가. 재판관도 이를 참작했겠지만 관대한 판례가 악용되는 점을 더욱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의미한 치료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인간의 생명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의 주장처럼 "열악한 사회복지제도와 미비한 의료법 체계로 야기된 보라매병원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보고 형사 처벌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실장 허대석)이 '보라매병원사건 확정판결에 대한 유감'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비나 생계비에 대해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면, 환자의 부인은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에 오지 않고 집에서 임종하는 환자의 보호자는 '살인죄'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의학적 판단을 정형화시킬 수 있는가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이 불법화될 때 우려되는 상황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임종문제 관련 법제도 정비 서둘러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들을 집으로 보내 임종하도록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번 판결로 혼란에 빠진다면 수많은 말기 암 환자는 무의미한 치료로 고통받는 기간만 연장시킬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이 늘어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부담 뿐 아니라 회생가능성이 높은 응급 환자가 중환자실을 이용 못해 사망하게 하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 허대석 교수(서울의대 종양내과교수)가 "보라매사건 이후 7년이 지났으나 임종문제와 관련된 법제도 정비와 저소득층 환자를 위한 의료복지 시스템 구축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당연한 문제 제기라고 본다.

의협 의사윤리지침 전혀 반영하지 않아

사실 의사협회가 지난 2001년 11월에 제정, 공포한 의사윤리지침 30조(회복불능환자의 진료중단) 2항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가족 등의 대리인이 생명유지 치료를 비롯한 진료의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하는 경우 의사가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당시 일부 논란이 없지 않았으나 이 조항은 환자가 자연적 사망 시점보다 앞당겨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회복불능환자의 치료중단을 규정하고 있는 의사윤리지침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에 대한 의료계 안팎의 논의를 다시 한번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치료중단 의사표시 유언장제도 검토도

의료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의 법적용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의료계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로 현행 제도 하에서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가족들이 몰려와 퇴원을 요구할 경우 병원이 이를 거부할 명분이나 통제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사법당국이 퇴원 허용을 살인방조죄로 처벌한다면 의사들은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와 유사한 사태의 예방을 위해서는 외국처럼 유언장이나 법정 대리인제도 등을 통해 환자나 가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의학적 충고에 반하는 퇴원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길 밖에는 별 다른 묘안이 없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는 우선 저소득층 중환자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차원의 제도적 장치를 구체화하는 한편 치료 중단에 대한 의사 표시를 환자가 미리 할 수 있는 유언장제도 등의 도입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황보승남/hbs5484@cdpnews.co.kr
[인터넷중소병원]  기사입력 2004-07-05,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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